그래, 어디 좀 왔어. 그냥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지. 여기가 어디인가 하는 것보다 '다른 곳'이라는 게 중요했어.
그래, 아주 만족하고 있어. 하루하루가 아주 천천히 흘러가. 지나가는 시간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야.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래, 여긴 '네가 없는 낙원'이지.
어제는 하루 종일 걷기만 했어.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걷다가, 도착하면, 바로 다음 목적지를 만들고, 그곳을 향해 걷고, 도착하면, 또 다른 목적지를 만들고,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사실 그 모든 목적지들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목적지가 아니었던 거야. 목적지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건지도 몰라. 그러나 적어도 그곳을 향해 걷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뭔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것이 목적지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난 아주 지쳤고, 하루가 다 지나갔을 때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어. 발목의 통증은 내가 꽤 많이 걸어다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난 정현종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렸어.
'하루가 지나가는 게 가장 좋은 거야.'
가장 아름다운 한때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이젠 인정할 수 있어. 아름다운 장미들이 마음껏, 일제히 피어났어. 그리고 곧 모든 것은 한꺼번에 끝날 거야. 그것이 좋은 시작이든 나쁜 시작이든, 모든 시작은 끝을 전제로 해. 얼마나 다행이야.
- '밀리언 달러 초콜릿' 중에서.. '네가 없는 낙원'
잡다한 생각과 고민들로부터 벗어나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는
걸어가고 있는 길과 그 길 끝에 있을 그 무엇에 대한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시간..
니가 곁에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어.
눈 깜짝할 사이에 5달이란 시간이 지나가 버렸더라.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 사이에..
그래서 너랑은 상관없는 나의 삶에 대해서, 진짜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
오로지 너와 나 사이의 나만 생각했었지..
근데 니가 없으니까, 다시 이기적인, 예전의 나로 돌아오게 되더라.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내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게 되고..
어쩌면 니가 없는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흘러가서
어쩌면 니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나 휑해서..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허전함에 친구들을 만났어.
놀러를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책이랑 영화도 실컷 보고, 한동안 미치도록 쇼핑도 했어.
근데, 그럴수록 허전함은 커져만 가더라..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이나고..
방학이 오는게 무섭더라. 시간이 많아지면 니 생각도 많아질테니..
무서웠어. 이렇게 너와의 기억에만 매달려 살게될까봐.
무언가에 몰두해서 니 기억으로부터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기억들을 잊는다기 보다는.. 너와의 추억속의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고 싶었어.
널 만나기 전에 너 없이도 잘 살던 나로 돌아가고 싶었고..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공부를 시작했어.
시험이 닥쳐야 공부하는 내 성격을 알기때문에 가까운 날짜에 시험이 있는 자격증 시험을 모조리 신청했어.
금융자격증, 토익, 컴퓨터까지.. 그렇게 토익수업을 듣고 컴퓨터 학원을 가고 도서관을 가고..
이렇게 산 지도 벌써 4주가 지났더라.
여전히 매일 밤 꿈속에는 니가 나오고 하루에도 몇번씩 니 생각을 하고..
우연히라도 마주칠까봐 길을 걷다가도 널 찾게되고..
아직 멀었나봐. 널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가봐.
그치만 나의 짧은 몇가지의 목표를 달성해가면서 그래도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아.
시간 때문일수도 있지만.. 자격증도 남았고..^^
아직도 예전의 내 모습을 온전히 찾지 못해서 난 또 새로운 목적지들을 찾고 있어.
이 목적지들이 내가 정말 가고 싶어하는 길인지..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무언가에 집중하는, 할 일이 있는 지금이 좋아.
이렇게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너와의 기억으로부터의 도피하기 위한 '다른 곳'이 아닌,
진짜 목적지를 찾게 되겠지?